청천리 집강소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무안에서도 활발히 일어났다.
배상옥장군을 필두로 수백명의 군민이 동학의 대열에 합류했는데
무안에는 동학군을 훈련시켰던 두 곳의 연병장이 있다.
동학의 가장 큰 이념은 외세의 척결 못지않게 사람을 중시하는 인내천 사상의 확산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전국의 각 군 현에는 집강소를 설치하였는데
무안의 집강소는 청천사에 있었던 것이다.
지붕 가운데의 청기와는 임금이 특별히 하사한 기와라한다.
청계면 사마리의 화설당
17세기 무안의 대표적인 강학교류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무안의 화설당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71호로 지정 고시되었다.
문화류씨 입향조인 류자의 손인 처사 류운(1580~1643)이 건립한 정자로 1612년 나주목사 박동렬이 수은 강항과 함께 찾아와 동백꽃이 피어서 화설이라 칭하고 시 한수를 남겼다고 한다.
당시 류운의 친구였던 우암 송시열이 편액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1728년과 1869년에 중수되었고, 완전한 일자형으로 정자의 전후로 툇마루가 설치되어있다.
또한 민가에서 볼 수 있는 봉창이 설치되어 있다.
삼향읍-2005년 11월 전남도청이 남악리로 이전함에 따라 신도청 소재지로서
서남해안발전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유교리의 나상열가옥, 왕산리의 초의선사 생가터, 오승우 미술관,
남악리에는 김성규의 99칸 유안당이 있었으나 1968년에 철거했다.
봉수산 아래 초의선사 생가터 일주암
초의는 정조10년 4월 5일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을 흥성 장씨이며 이름은 意恂이다.
초의는 출가후 스승 玩虎 倫佑로부터 받은 것이다.
15세때 나주 남평의 운흥사로 출가하였으며,
19세때는 해남 대흥사에서 완호스님으로부터 具足戒를 받았다.
탱화를 잘그려서 당대 오도자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한국 최고의 근대화가인 소치 허련이 초의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서예는 天衣無縫 (천의무봉)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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